1.

어떠한 몽타주를 만들기 위해 여러 조각들을 모으는 중입니다. 관리와 저작권, 그리고 배열 편집을 위한 정보가 각각의 조각들 하단에 로트번호, 채집 장소, 일자 순으로 초록색으로 기입되어 있습니다.

2.

허정수는 북디자이너이며 보통 서울 상수동 인근에 있습니다.

사진은 일종의 파편에 불과한 것으로서, 세월이 지나면 사진안에 고정되어 있던 내용도 떨어져 나간다. 사진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아늑하고도 추상적인 과거가 되어 버리기에 다양하게 얽힐 수 있다(아니면 다른 사진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사진은 일종의 인용구이기도 하기에, 사진을 모아 놓은 책은 인용구를 모아 놓은 책이나 마찬가지이다.

Lot No. 00002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2005), 114p~122p.
2022/7/20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어떤 것인가. 불편과 부당, 폭력이 만연하는 세계? 혹은 차별과 빈곤과 착취로 얼룩진 세계? 물론 이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가리는 세련된 판타스마고리아의 세계에서 배짱 좋게 잠자는 일이 아닐까. 참을 수 없는 세계란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추구에도 불구하고, '권태와 무위' 속에서 '항구적인 일상적 진부함의 상태'를 살아가게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닐까. 이런 세계는 사유의 불가능성을 조장한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들 속에서 사유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조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는 상태를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그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출구는 그때 만들어진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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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Joan Miró i Ferrà, 1893~1983)는 해변에서 떠내려 온 것들이나 길에서 주운 것들을 그의 스튜디오에 가져다 놓았고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가 돌멩이를 주우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주운 돌멩이는 그저 돌멩이지만, 미로가 주운 돌멩이들은 바로 호안 미로 자신이다." 미로의 친구이며 전시기획자인 호안 프라츠(Joan Prats)가 했던 말이다.

Lot No. 00001
정병규, 디자인 인문학 강의 중.
미상

인간은 인간만의 고유한 속성을 그대로 지닌 채 신이 되기를 꿈꾸고 신은 전지전능한 힘을 그대로 지닌 채 인간이 되길 꿈꾼다.
—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

Lot No. 00001
장 디디에 뱅상, 『인간속의 악마』, 류복렬 옮김, 푸른숲(1997), ???p.
2021/05/09

인간은 자신의 언어속에 갇혀있다. 비행기를 탄 탑승객들이 나중엔 자신들이 선실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과 같다. 사고와 언어를 혼동한다.

Lot No. 00001
장 디디에 뱅상, 『인간속의 악마』, 류복렬 옮김, 푸른숲(1997), ???p.
2021/05/09

영화나 회화의 몽타주나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자이크화가 각각 나름의 고유한 색깔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파편들로 구성되듯이, 벤야민의 문학적 몽타주는 언어로 만들어진 문장들이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공간에 재배열(재인용)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로 구성된다. 이때 각각의 파편들은 자기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장소에서 이웃한 것들과 관계 맺음으로써 전혀 다른 효과를 생산한다. ⋯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그는 19세기의 "가장 철저하게 바깥으로 향해 있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들 상호 간격의 특징을 규정하고 보존" (N 1,3)함으로써 19세기로부터의 각성을 시도한다. 그것을 통해 "당시의 삶 그리고 외견상으로는 부차적이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듯한 형식들로부터 오늘날의 삶, 오늘날의 형식들을 읽어 내려는 것"(N 1,11)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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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을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 나는 사진에 담고 싶지 않은 것을 그린다.
— 만 레이(Man Ray, 1890~1976)

Lot No. 00001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2005), ???p.
2022/03/05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경험한다는 것, 그것은 부득이하게 잘못 경험 하고 있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Lot No. 00001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200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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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이가 나의 어깨를 톡톡 칠 때 우리는 손이 어깨에 와 닿는 것만 중요시하지,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이는 닿는 일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나 우리 범속한 인간은 대개 있음의 세계, 현상의 세계만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달라붙는다. 이제 눈을 떠서 이런 있음의 세계를 통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없음의 세계, 비존재의 세계에 눈을 돌리고 그것이 지닌 근원성, 역동성, 창조성 등을 인지하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있음의 세계. 존재의 세계는 없음의 세계, 비존재의 세계를 드러내 주는 계시자(revealer) 내지 '암호(cypher)'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동양화는 주로 이 원리에 따른 것 ⋯ 우리는 매화 가지와 참새를 그림의 주제로 생각하고 ⋯ 그 뒤에 공간으로 대표되는 무나 공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수단 내지 상징이다. 결국 인식의 초점이 매화와 참새에서 그 뒤 공간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이렇게 인식의 초점이 뒤바뀌는 것을 '인식의 천이(noetic reversal)' 라 한다.
동양의 그림뿐만 아니라 시도 마찬가지다. 말을 지극히 간결하게 하고 나머지는 공백으로 남겨 놓는다. ⋯ 현상적인 것을 통해서 현상 너머의 것을, 시간적인 것(the temporal)을 통해서 무시간적인 것(the a-temporal)을 표현하고 그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있음의 세계, 존재의 세계를 보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없음의 세계, 비존재의 세계를 인지하고 체득하라. 이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체험이다.

Lot No. 00001
노자, 『도덕경』, 오강남 풀이, 현암사(2010), 64p
2022/01/10

캔버스는 보는 사람을 관조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는 그 앞에서 자신을 연상의 흐름에 내맡길 수가 있다. 그러나 영사막 앞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영화의 장면은 눈에 들어오자마자 곧 다른 장면으로 바뀌어버린다. 그것은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를 몹시 싫어했고 영화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했으면서도 영화의 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파악하였던 뒤아멜은 이러한 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나는 이미 내가 생각하고자 하는 바를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움직이는 영상들이 내 사고의 자리에 대신 들어앉게 된 것이다."37) 실제로 이러한 동영상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영상들의 끊임없는 변화로 인하여 연상의 흐름이 곧 중단되어버린다. 영화의 충격효과는 바로 이러한 데에 그 근거를 두며, 또 이러한 충격효과는 다른 충격효과가 모두 그러한 것처럼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상태(Geistesgegenwart)에서만 받아낼 수 있다.38) 영화는 그것의 기술적 구조의 힘 덕택에 다다이즘이 아직도 충격 속에 포장해서 감싸고 있던 육체적 충격을 그 포장으로부터 해방시켰다.39)


37) [원주]Georges Duhamel, Scenes de la vie future, 제2판, Paris, 1930, p.52. [조르주 뒤아멜, 1884~1996: 의학을 공부한 프랑스의 소설가, 비평가, 시인. -옮긴이]

38) [원주]영화는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증대하는 삶의 위험에 상응하는 예술형식이다. 충격효과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그들을 위협하는 위험들에 적응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영화는 인간의 지각체계에 일어난 심대한 변화들에 상응하는데, 이 변화들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대도시의 교통 혼잡속에 모든 행인이, 그리고 역사적 차원에서는 오늘날의 시민이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39) [원주] 다다이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체파와 미래파의 경우에도 영화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입체파와 미래파는 현실이 기계장치와 상호침투하는 현상을 나름대로 고려해보려는 불충분한 시도들로서 등장했다. 이들 유파는 영화와는 달리 기계를 이용해서 현실을 예술적으로 재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재현된 현실과 재현된 기계를 합금하듯 융합시킴으로써 그러한 재현을 시도했다. 그런데 입체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광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기계장치[카메라]의 구조에 대한 예감이다. 그리고 미래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영화필름의 빠른 진행에 의해 생겨나는 이 기계장치의 효과에 대한 예감이다.

Lot No. 00001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길(2007), 142p.
2022/08/04

2021년 9월 서울에서

관객 여러분께,

이 설치에 들어서는 순간, 자동문이 당신을 팽창과 긴장의 영역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이 문은 당신을 부르는, 또 동시에 속박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입니다. 폭력적인 정상화의 문이자, 호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지나갈 수 없는 문, 지나면 쾌락이 있을 것이라 약속하지만, 언제나 그 약속을 지키지는 않는 문, 유령들을 위한 문, 탈출을 위한 문, 당싱이 지나는 동안 당신을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문, 무대 뒤와 무대 위,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으며, 또 그 양쪽이 계속해서 뒤바뀌는 문.

시간이란 하나의 시퀀스를 따라 차례로 펼쳐지는 선형적인 것이어서 과거로부터 한 발씩 멀어지며 미래의 지평선을 가리킨다는 개념을 어떻게 하면 배신할 수 있을까요. 이브터크가 쓴 것처럼, 선형적인 시간이라는 모델은 언제나 식민적 침탈과 폭력에 묶여 있습니다.

극단적인 느낌, 어긋난 동기화, 뒤떨어짐, 중단 또는 고요가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면서, 동시에 탈출로를 만들어가는 이 춤 실험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리듬과 힘의 관계에 집중할 때, 우리는 몸을 조율하고, 퀴어 친화력을 향해 합주하듯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트와 비트 그 사이에 있는 멈춤에 희망을 겁니다.

당신의 레나테와 폴린.

Lot No. 00001
Pauline Boudry / Renate Lorenz, <(No)Time>, 2020, 복합 매체 설치, 서울시립미술관, ≪하루하루 탈출한다≫ 2021.9.8 - 11.21.
2021/??/??

문양이나 도표는 리듬을 새긴 선이나 윤곽도에서 발견됩니다. 그것보다도 정확히 말한다면, 인류가 그리기 시작한 '선의 역사' 라고 하는 것은 먼저 리듬의 선이 나타나고, 다음에 간단한 문양이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윤곽선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 순서입니다.

Lot No. 00001
마쓰오카 세이코, 『정보의 역사를 읽는다』, 김승일 외 옮김, 넥서스(1998), ???p.
2021/03/07

5지대향(五指對向)은 원숭이류가 나뭇가지를 잡고 수목을 건너다닐 때 시작되었고, 영장류가 물건을 쥐고 사용할 때 자각적(自覺的)이 되었다. 인간은 평소에도 5지대향이 생기는데, 이것이 숫자의 발견을 촉진했다.
따라서 손가락을 굽힌다는 것은, 정보문화에 의거해 본다면 넘겨 버려서는 안되는 중요한 기능입니다. 이 기능을 '분절(分節)' 이라고 합니다. 아티큐레이션(articulation, 음절로 나누어 명확히 하는 것)이라는 것이자요.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에 의해 정보를 단락지으려는 것입니다.

Lot No. 00001
마쓰오카 세이코, 『정보의 역사를 읽는다』, 김승일 외 옮김, 넥서스(1998), 74p.
2021/03/17

이토록 곤란한 사람이 있을까? 부정의 방식으로밖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이라니. ⋯ 그는 아렌트의 말처럼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 무엇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남겼던 것 이상으로 그 무엇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내용들은 대부분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그가 그 무엇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들에 대한 빛나는 흔적들을 남겼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될 수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도 되지 않았던 (하지만 때로는 될 수 없었던) 그의 선택, 혹은 탁월한 위치 감각에 있다. 그는 어느 하나의 장소 혹은 위치를 점유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지식의 권력자가 되는것을 거부했다. ⋯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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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자'의 능력인 명상적 지성의 사유를 대비시킴으로써 '세련된 폭력의 길'로부터 벗어나고, '교차로'에서도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는 '전체를 인식한다'는 거창한 의식 대신에 작은 파편들 속에서도 세계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행동한다. 때문에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사유의 파편들을 제시했을 때 , 그의 목적은 세계를 파편화하고 다시 그것을 조립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파편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길'(공간)을 발견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벤야민은 그것을 위해 파괴적 성격의 수집가, 사진작가, 필경사, 산책자, 그리고 비평가와 역사가가 되어야 했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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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체는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 ⋯ 자연은 넓이를 메우기 위해 원초적 조합 또는 유형의 하나하나를 무한대로 반복해야만 한다. ⋯ 우리와 똑 닮은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 무수히 존재한다. ⋯ 이들은 결코 유령이 아니다. 영원화된 현재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큰 결점이 있다. 진보가 없는 것이다. ⋯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것은 각각의 세계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러한 세계와 함께 사라진다.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지구라는 투기장에서는 똑같이 좁은 무대 위에서 똑같은 드라마가 똑같은 배경에서 펼쳐질 뿐이다. 자신의 위대함에 저혼자 반해 법석을 떠는 인류는 스스로를 우주라고 믿고,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옥 안에 살고 있다(블랑키, 『무장봉기 지침: 천체에 의한 영원』 / 「1939년 개요」, 133~134쪽).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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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만들어진 문명의 창조물들은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사물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것들이 현실을 가리는 베일의 역할을 하는 판타스마고리아를 만들어낸다. 사치품들의 거래 장소인 아케이드, 오락 산업과 결합된 만국 박람회, 부르주아들의 실내 등은 판타스마고리아의 대표적 장소이며, 그 시대인들이 꾸었던 집단의 꿈을 확인할 수 있는 물적 증거들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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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반복'을 '새로움'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집단의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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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는 여러 개별적 사실에 대해 어떤 다양성 속에서 확장된, 파괴된 일회성 속에 실존하는 의미에 관해 하나의 암호를 전해 준다. 이에 반해 상징은 여러 개별적 사실에 대해 어떤 다양성 속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일원적 의미에 관하여 하나의 암호를 전해준다. 그렇기에 상징은 결국에는 이른바 도달하는 어떤 '필요한 유일성'으로 향할 뿐, 일시성 내지 다의성을 띠면서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는다. ⋯ 이에 비하면 알레고리는 하나의 확정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채 끝없이 운동하며, 스스로를 유보하지 않는가?(블로흐 『희망의 원리』, 1권 357쪽) 즉 알레고리가 하나의 의미로 결박되기를 거부하며 다양한 의미를 향해 끊임없이 미끄러져 나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상징은 유일한 의미로 고정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표현의 기술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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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은 교환가치와 전시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실체를 결여한다. 생산의 주기와 유행의 우연성 속에서 상품은 시대에 뒤처진 폐물이 될 운명을 지닌다. 그러므로 상품은 알레고리와 또 하나의 공통점을 보인다. 공허하고 무력한 상품은 폐허로만 나타날 수 있다(질로크,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270~271쪽).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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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가해한 산맥, 아니 상품지옥의 대열, 그곳이 '도시'였다(『베를린 연대기』, 211쪽).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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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형식이 모든 생의 표현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형식, 즉 지배적 형식으로 화한 사회"(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73쪽)인 것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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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든 꿈을 개인들의 성적인 욕망의 문제로 수렴시키는 프로이트나 집단의 원형 상징으로서의 꿈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융 모두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에게 꿈은 집단의 것이지만 개인들에게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이미지이며, 한 시대의 표현물이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대의 에피스테메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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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와 패션 박람회에서 만들어지는 환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생산하게 하고 저항하게 하는 욕망 대신, 자본과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욕망을 욕망하도록 만든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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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들은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 극장, 미술관 등 어디에서나 군중들과 마주친다. 전시장의 무료 관람일에 몰려든 사람들. 그들이 관람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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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밀고 밀리며 지나쳐 가는 온갖 계급과 신분의 수만 명의 사람들, 이들은 똑같은 특성, 능력을 갖고 있으며 너나없이 행복해지는 것에 관심을 가진 똑같은 인간들이 아닐까? 이들은 모두 결국 똑같은 수단과 방법으로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이들은 뭐 하나 공통된 것 없는 것처럼, 서로 뭐 하나 관련도 없는 것처럼 각자의 길을 재촉하며 지나쳐 간다. 이들 사이에 이루어진 유일한 합의는 보도의 우측으로 걸어가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바삐 지나가는 양쪽 군중의 흐름을 멈추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것뿐이다(엥겔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M 5a,1).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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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군중 속에 잠기는 재능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군중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고, ⋯ 자신의 고독을 채울 줄 모르는 자는 역시 분주한 군중 속에서도 홀로 존재할 줄 모른다. 시인은 제멋대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동시에 타인이 될 수도 있는 비길 데 없이 훌륭한 특권을 누린다. ⋯ 고독하고 사색적인 산책자는 온갖 사람과의 이 교류 속에서 어떤 독특한 도취를 끌어낸다. 쉽사리 군중과 결합하는 자는 열광적인 환희를 알고 있다. 상자처럼 닫힌 에고이스트나 연체동물처럼 갇힌 나태한 자는 영원히 누릴 수 없는 환희다(보들레르, 「군중」, 75~76쪽).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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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행복을 느끼는 것은 과거의 어떤 좋았던 상태의 경험이 현재의 무엇과 만나면서 해방적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이미지 속에는 구원의 이미지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함께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과거의 이미지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하고 있다.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테제」,344쪽). 과거의 행복했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이미지'로 현재와 만나는 방식,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은 행복을 느끼고 구원을 얻는다.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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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것은 어제나 내일이나 항상 우리 스스로의 이미지를 보게 한다

Lot No. 00001
샤를 보들레르, 『Le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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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 뒤에서 누구나 말을 생산할 수 있고 출처없는 그 말들이 아무렇게나 퍼져나가는 시대, 그래서 칼날같은 말들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 가장 먼저 말에 베이는 이들은 말을 목숨같이 아끼는 사람일 것이다.
—신샛별(문학평론가)

Lot No. 00001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문학동네(2018), ???p.
2019/??/??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게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만남. 그것은 비단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와 강한 인상으로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는 한 권의 책, 한 장의 사진, 한 편의 영화가 있다. 그것을 경험하기 이전의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로 우리를 바꿔 버리는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만남. 그 결과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인간으로 변모하고, 한 권의 희귀한 책이 만들어지며, 결정적인 혁명의 계기가 발생한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역시 몇 가지 특별한 만남들로부터 강하게 촉발되었다. 시작은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이었다. 아도르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아라공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 파리의 농부가 그것이죠. 저는 이 책을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 읽었는데, 2~3페이지 이상은 결코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심장이 어찌나 요란스럽게 고동치던지 책을 내려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경고입니까?"

Lot No. 00001
권용선,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그린비(2009), 57p
2022/7/1

⋯ 육체적 실무와 감정노동을 제외하더라도, 누구도 증오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꾸리는 일이란, 생각보다 높은 열량을 필요로 했다. 친밀한 사람들 — 그보다는 서로 조심해야 할 관계로 이루어진 그물망을 유지 보수 하기 위해 단순성과 모호성을 동시에 장착하고 자유로이 구사해야 했다. 삶을 오엑스 퀴즈로 간주하고 그 중간에 발을 걸쳤다가, 어느 쪽으로든 건너오라는 요구를 받으면 다수가 선 자리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Lot No. 00001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문학동네(2018), ???p.
2019/??/??

⋯ 그래야 사람들이 희생자의 꽃다운 나이와 펼치지 못한 아까운 인생에 대해 보다 즉각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형 사고 및 재난에 경각심을 가지게 될 터. 그것이 떠난 이들의 영혼이 이 지상에서 수행하는 마지막 역할이다. 이 때 그들이 인간이기에 풍길 수 밖에 없는 냄새를 지우고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전인이자 인격체로서의 흔적만 남겨야 할 터. 이 때 숭배할 만한 대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서사적 전략이며 나이가 어릴수록 …

Lot No. 00001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문학동네(2018), ???p.
2019/??/??

⋯ 한 면만 아는 사람과 양면을 아는 사람이 입씨름을 하면, 양면을 아는 사람이 집니다.

Lot No. 00001
노자, 『도덕경』, 오강남 풀이, 현암사(2010), ???p.
2022/01/10

"서양인은 보려하고 동양인은 되려한다"는 단순치 않은 아포리즘 ⋯
— 유경희 (미술평론가)

Lot No. 00001
『이응노와 마르코폴로의 시선』, 대전시립미술관/이응노미술관(2011), 15p.
2021/07/06

⋯ '발가벗은 생명nuda vita'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의 주류에 포섭되지 못하거나 중심을 이탈한 채, 사회의 주변부에 남겨진 '덤'이자 주위를 맴도는 '잉여'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 '우수리'야말로 사회를 통합하는 잠재적인 힘을 머금고 있는 실재들이다. 사회공동체는 질서의 체계를 붕괴시키거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사회의 내부에 도사리고있는 잠재적인 폭력의 힘을 이 소수들에게 가하는 공동체의 집단적 폭력으로 표출하며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사회의 평화를 확보하고 유지하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르네 지라르는 사회 공동체가 아와 타를 가르는 경계를 그으며 모종의 '결정을 감행하는' 배제의 논리1에 기반하여 가하는 집단적 폭력이,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불안을 제거해내는 일련의 정화 과정이며, 이때 '우수리'는 거반이 희생양이라고 지칭해야 옳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평화는 희생제의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희생양은 폭력의 행사 이후에도 사회에서 사라지는 법이 없다. 소멸의 길을 걷는 대신, 눈 밖에서 존재하는 길을 택한 그들은, 공동체의 문화적 무의식을 잠식하는 기저를 이루어, 오히려 자기 동일성과 전체주의적 획일성을 혁파하려는 본능과 같은 직감에 의지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살아가며, 언제고 실행 가능한 잠재태가 되어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 이 우수리는 흔히 미혼모, 창녀, 장애인, 이혼녀,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거지, 가난한 노인 등이거나, 인종적으로 유대인이나 집시, 종교적으로 마녀나 이교도 따위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제 표지 때문에, 사회의 자기동일성과 충돌하는 제 차이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나 희생양으로 선택된 자들이다.
—조재룡 해설


1. 라틴어로 '결정하다'를 뜻하는 'decidere'는 희생물의 목을 자르다'를 의미한다. 르네 지라르, 『희생양』, 김진식 옮김, 민음사, 1998, p. 197 참고.

Lot No. 00088
김이듬, 『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사(2014), 136p.
2022/04/02

관광객이 아니라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Lot No. 00089
정병규.
2022/08/09

⋯ 이 공간을 벤야민은 '고향Ursprung' 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철학자나 예술가에게 고향은 그들만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메타포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적인, 돌아가야 할, 실제적인 고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이방인이자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살아야하는 운명인 것이다. 익숙한 이곳과 결별하고 낯선 이곳 저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스로 정주의 삶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 예술가는 스스로를 광야로 내모는 자들이다. 타자가 되기 위해, 그러니까 스스로를 소외된 자, 배제된 자로 만들기 위해서다. ⋯ 소외와 배제의 체험만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예민하고 날선 감각을 유지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 스스로 타자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한 예술가이자 인간이었던 고암이 있다. 그는 두 겹의 타자다. 하나는 정치적인 타자로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타의적 타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술가라는 자발적 타자이다. 이렇게 겹쳐진 컨텍스트 속에서 그가 만년에 그렸던 동방견문록에 대한 그림은 영원한 노스텔지어로써의 고향, 유토피아로써의 고향으로 들어가는 길목 즉 입문의식initiation에 관한 것이다.
— 유경희 (미술평론가)

Lot No. 00090
『이응노와 마르코폴로의 시선』, 대전시립미술관/이응노미술관(2011), 13p.
2021/07/06

진지하면 왕따되는 세상, 영화 개봉 4년 후인 지금은 더더욱. ⋯ 서사를 찾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 ⋯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잠이 안올 때 읽곤 했는데 이걸 아이처럼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밤이 있었다 ⋯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둔다는 것은 파괴적일 수도 얽매일 수도 있는 위험이 ⋯ 의미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 ⋯ 주인공이 되기 힘든 세상 ⋯ 그레이트헝거 상태는 인간의 궁극적 고통 ⋯ 의미만 찾으면 신 아래서 두렵지 않다 ⋯ 가라타니 고진의 '목숨을 건 도약' ⋯ 타인에게서 나를 찾는 ⋯ 도스토옙스키의 '분신' 이슈 ⋯ 여러분의 마음속에 부정적 감정, 혐오, 분노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한번 탐구해 보길 ⋯ 비가시성과 부재 ⋯ 마지막 장면은 하나의 시작같은 느낌을 생각 ⋯ 한 미지의 인간의 모험의 시작 ⋯ 그건 그저 질문으로 남기려는 장치였다. 모든 답을 준비해두진 않는다. ⋯ 앞으로 영화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양극화될 것이다 ⋯ 부시맨은 땅의 흔적을 지운다. 다음 방문자가 누릴 수 있도록 ⋯

Lot No. 00001
오정미(시나리오 작가), "<버닝> 시네토크", 서울아트시네마(2022).
2022/06/18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선 저편 건너에, 나 모르게 휘감겨 타오르는 불확실한 감정이, 우리 기억의 주변에서 아우라가 되어 떠돌고 있을 때, 김이듬은 이 아우라를 알레고리에 의지해 지금—여기로 불러내면서 "예술, 사랑, 쾌락, 악, 진리, 희망, 복수, 증오, 존경, 질투, 사념"1에 관한 걸출한 목록 하나를 만들어내고, 이 목록 위에 자신의 감정을 덧붙여내며, 벌거벗은 생명들과 시 쓰는 자아를 이 목록의 주체로 등재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조재룡 해설


1.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p. 786.

Lot No. 00001
김이듬, 『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사(2014), 166p.
2022/04/02

데카르트는 이성의 선험적 근거에 의지하여 '최초의 명제'를 찾아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 결과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명제를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회의를 하는 것은 잊어버린 듯 싶다. 판단을 언어로 표현한 것을 명제라고 할 때, 그는 '정신적인 판단 그대로를 과연 언어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회의와 논증을 빠뜨리고 있다.

Lot No. 00001
마광수, 『인간』, 해냄(1999), 183p.
2022/07/??

인간은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소유하려 한다.
— 마이클 소마레Michael Somare

Lot No. 00001
미상
2020/??/??

⋯ 인물들은 이케아 속 쇼룸 상품들처럼 간호사, 고시준비생 등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성격이 직업으로 설명되고, 개성은 소비품목으로 재현된다. 한 사람의 생애가 몇개의 명사로 압축된다.
— 강유정 (문학평론가)

Lot No. 00001
김의경, 『쇼룸』, 민음사(2018), ???p.
2019/??/??

⋯ 인셉션의 '킥'과 비슷한 것이다. 작가가 작중 인물에게 전형적인 설정을 무리하게 추가하여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라는 신호를 독자에게 준다. 대개 드라마 속 인물이 그렇다.

Lot No. 00001
『Open Recent Graphic Design 2019』, Press Room(2019), ???p.
2019/여름/???

불가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과 상상력을 자유롭게 한다. 불가능은 인간의 사고를 완전히 다른 지평으로 열어놓는 열쇠 역할을 한다.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의미있는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가능하지 않은 것을 고민하지 않으므로 ⋯

Lot No. 00001
숀 홀, 『기호학 입문 의미와 맥락』, 김진실 역, 비즈앤비즈(1999), 183p.
2021/07/24

제약이 있으면 창조가 더 쉽다. ⋯ 제약을 다루기 때문에 우리는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Lot No. 00001
민구홍, "새로운 질서(초급 17기)", 취미가(2022).
2022/07/08

이런 삶은 이분법적 의식을 초월하여 '양극의 조화'를 체득한 삶이다. 이렇게 홀로 도와 하나되는 삶을 살아감으로 고독한 사람을 두고 'the alone with the Alone'이라 한다.

Lot No. 00001
노자, 『도덕경』, 오강남 풀이, 현암사(2010), 105p.
2022/01/18

⋯ 나는 컬러 사진이 발화적이라면 흑백 사진은 문자적이라고 생각했다.

강운구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컬러사진의 컬러는 대체로 잔소리가 많다. 그 컬러를 천연색이라고 하지만 천연과는 거리가 먼, 그 필름 브랜드의 고유한 색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을 흑백사진으로 변환하면 단순한 추상적인 빛깔만 남는다. 그리하여 잔소리들이 사라지면 문득 대상의 본질이 확연히 드러난다.

Lot No. 00001
정병규, 『정병규 사진 책』, 사월의눈(2021), 136p.
2021/??/??

⋯ 책은 그저 시각적 오브제가 아니다. 시각적 표현 기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시각적인 요소만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꾸밈이나, 장식, 또는 포장에 그치고 말 것이다. 언어예술이나 문자의 세계 또한 시공간의 지각적 횡단이나 폴리오의 펼침 없이는 책이 될 수 없다. 활자나 타이포그래피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책이 아니다. 진정한 책은 시지각적인 시퀀스와 파롤을 품은 언어형식의 신택스syntax가 동시에 펼쳐지는 '가시적/비가시적'인 세계이다.
— 박상순(시인)

Lot No. 00001
정병규, 『정병규 사진 책』, 사월의눈(2021), 431p.
2021/??/??

⋯ "마치 암(癌)처럼 서서히, 그러나 집요하게 모든 부분에 존재의 병은 스며 들어온다. <우리는 잉여물이다>는 그 존재의 병이. 그리하여 <나의 얼굴과 나의 손>, 그리고 <나>마저도 존재의 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리하여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命題)인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가 튀어나온다. 왜냐하면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물에 본질이 수여됨으로써 그것은 하나의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 한없이 <구역질>만을 느끼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구역질의 심한 허무주의에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빠져버리지 않는다. 근원적으로 (우리가 말해온 방향과는 정반대로) 존재자란 우연성이라는 어쩔 수 없는 존재자성(存在者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사실성(事實性)> 즉 우리의 현존성의 어찌할 수 없는 우연성, 목적도 이유도 없는 우리의 <존재의 우연성>을 인정하기로 하자. 그렇다고 완전한 페시미즘에 빠질 수는 없다고 ㅅ르트르는 생각한다. 왜? 우리는, 우리 인간은 목적 없고 이유 없는 현존재에 본질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기 때문에. 이렇게 목적도 이유도 없는 현존성에 이유를 주고 실체를 이룩하기 위한 사르트르의 사고는, 곧 대상과 무의식의 문제로 옮아간다. <의식을 지탱하는 어떤 절대> 혹은 칸트식의 <물자체(物自體)>를 상정(想定)할 수 없는 그는 유일한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의식만을 말할 뿐이다.
— 방곤(경희대 교수)

Lot No. 00001
장 폴 사르트르, 『구토』, 방곤 옮김, 글방문고(1986), ???p.
2022/08/04